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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05-09-01 16:48:07, Hit : 4044, Vote :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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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45주년사 원고(1993-2005년)
5. 교회 1차 사명기(1993-2005년)
1991년 교회 본당화재 복구와 1992년 교회 증축공사 후에 교회 분위기는 일신되었다. 증축관계로 교회 본당 안에 여러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모습이 약간은 볼 성 사납지만, 배나 커진 건물로 인해서 교회가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본당에는 약 700명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많은 교육공간이 생겨나고 지하식당도 배나 커짐으로 300명이 식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화장실도 배나 커지게 됨으로 줄을 서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증축하기 전에 좁은 공간에서 주일이면 수백 명이 힘들어하던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특히 교회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날개를 단 표정들이었다.
또한 특기할 사실은 1993년-2005년까지 하나님이 사명의 길을 열어주셔서 교회 밖을 활발하게 사역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5년 단위로 세 개의 개척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고, 2004년에는 두 가정을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교회 재정형편에서는 너무나 벅찬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온 당회와 제직회,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 믿고 최선을 다해 그 사명을 감당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재정을 허락해 주셨으며, 아울러 보너스로 우리 교회에도 엄청난 복을 허락해 주셨다. 창립 35주년 기념으로, 1995년도 제1개 개척교회를 설립한 결과, 교회 아래 대지 128평을 허락해주셨고,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2000년도 제2개척교회를 설립한 결과, 교회 앞에 250평의 상가건물을 구입하여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또한 창립 45주년 기념으로 2003년 제3개척교회와 선교사 두 가정을 단독으로 파송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어떠한 보너스를 주실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금 우리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숙제는 교회 이전문제이다. 이 지역이 아파트 개발지역이 됨으로 우리 교회가 큰길가로 이전하여 신축하는 문제로 지금 협상 중에 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도하신 대로 앞길도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 우리 교우들은 믿고 기도하고 있다.    

(1)증가하는 교세, 청년부의 성장
교회를 증축한 후에 교세는 크게 증가하였다. 600명 선에 머물던 장년집회수가 93년부터 700명 선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일고 있는 교세둔화 현상 때문인지 평균 집회수가 700명 선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00년도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1993년부터 매년 부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새생명축제’라는 전도운동과 아울러, 청년부의 부흥이 1994년부터 장년집회수가 800명 선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00년도에 들어 청년부의 부흥을 위해 주일 4부 예배를 신설하고 담당 교육전도사로 최영걸 전도사(1995년도 목사안수 받음)를 청빙한 결과, 청년들의 수가 날로 중가 하여 매주 평균 150명 이상 모이는 큰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사역하고 사임한 전임 교역자는 임근묵 목사(1994년 부임, 1996년 목사안수, 2003년 사임), 이만용 목사(1994년 부임, 1997년 목사안수, 1997년 사임) 정문자 전도사(1998년 부임, 2003년 사임)  

(2)지경을 넓어지는 교회
1993년부터 2005년까지 교회의 재산이 많이 증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교회대지는 159평에 불과했지만, 2005년도에는 460평으로 무려 세 배나 증가하게 된 것이다. 1995년 4월 10일 교회 아래 대지(마장동 350-4, 5, 6번지) 128평을 6억여 원으로 구입했고, 1996년 12월 교회 건너편 대지(사근동 226-5번지) 41평을 1억 8천여만 원으로 구입했으며, 1998년 11월 대지(마장동 381-26) 27평을 1억 3천여만 원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2000년 12월 교회 앞 건물(연건평 250평)과 대지(81평)을 전용 교육관용으로 약 6억여 원에 구입함으로 교회 대지는 총 460평으로 교회 지경을 훨씬 넓히게 된 것이다.

(3)3개의 개척교회 설립
1995년 교회는 창립 35주년 기념으로 경기도 고양에서 개척교회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손철구 목사를 후원하기로 했다. 후원 방법은 교회당 전세금 중 일부와, 3년 동안 매월 부목사 사례금을 보조하고 6개월 동안 매주 장로 1인과 각 기관이 순차적으로 예배를 참석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1995년 6월 19일 창립예배(고양홍익교회)를 드렸다.
2000년 교회는 창립 40년 기념으로 동대문구 전농동에 개척교회를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이준문 목사를 후원하기로 했다. 후원은 제1개척교회 설립당시의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2000년 8월 창립예배(복된홍익교회)를 드렸다.
2003년 교회는 창립 45주년 기념으로 2년 앞당겨서 인천시 검암동에 개척교회를 계획하고 있는 임근묵 목사를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후원 방법은 제1, 제2개척교회 설립당시와 다름이 없습니다. 2003년 12월 21일 창립예배(아세아홍익교회)를 드렸다.

(4)선교 활동에 박차를 가함
우리 교회가 본격적으로 해외선교를 시작한 때는 1994년으로, 베트남 나트랑 위치한 ‘푹하이교회’의 증축과 매월 선교비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1996년 모스크바에 ‘모스크바홍익교회’를 창립하고 죠가이 유보비 전도사를 파송하게 되었고, 1997년 알젠틴 개척교회(이광보 선교사)를 설립을 위해 100평의 대지를 구입했다. 또한 1998년에는 중국 연변에 홍예인 간호선교사를 파송했고, 2001년 서울노회가 설립한 몽골 울란바트라에 설립한 교회(조유상 선교사)에 선교비를 보내기 시작했다.
특이한 사항은 2003년부터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함으로 외국인근로자선교회(위원장:윤종삼 장로)를 구성하고 적극 활동함으로 현재 20여명에 이르고 있는데 대부분 네팔 형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2003년 4월 교육관에 있는 달린 집 한 채를 그들의 숙소로 제공함으로 간접선교의 큰 역을 감당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해외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하고 해외선교사파송위원회(위원장:정달영 장로)을 구성하고 단독 선교사 두 가정(박진완 목사와 윤호영 의료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했다. 또한 앞으로 선교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선교에 전념하고 있는 본 교회 청년(류종수,  이미란, 김범석, 소병찬 조슬기)에게 매월 선교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청년부원들의 단기선교에 적극 후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선교비 후원담당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독선교사와 북한선교 후원은 홍익선교회가 담당하고, 협동선교와 외국인근로자선교와 선교인재 양성비는 교회경상비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아름다운선교사 부부는 2004년 1월 뉴질랜드로, 박진완․문보경 선교사는 2004년 9월 카나다로 선교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가슴 아프 것은, 맹지혜 선교사가 선교훈련 중 중병으로 급하게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치료 중에 있다는 점이다.    

(5)성숙해 가는 교회학교
1992년 교회가 증축하고 1993년 5월에 옆 상가건물 2층(25평)을 전세들은 후에 교회학교는 점점 성숙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993년부터 중고등부가 분리하여 고등부는 본당에서, 중등부는 지하문화관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유치부나 유년부, 소년부도 공간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예배를 드리고 분반공부에 힘쓰게 되었다. 더욱이나 2000년도에 교회 앞 상가건물(지하 2층, 지상 3층)을 구입하여 교육관으로 대대적으로 수리한 후에는 교회학교가 완전히 독립하여 예배와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지하2층은 고등부실, 지상3층은 중등부실, 지하1층은 소년부실, 지상1층은 유치부와 유년부실, 지상2층은 평일에는 유치원, 주일은 분반공부반이 됨으로 교회학교의 모든 불편은 거의 해소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사역했던 교육전도사들을 살펴보면,  
김석봉(중등부 1994-1994), 이효선(유치부 1994-1997), 한상희(유년부1994-1996),
박현신(1994-1996), 이남수(소년부1994-1995), 원승묵(고등부 1994-1996),
박정환(소년부 1996-1997), 배용우(고등부 1996-1997), 조성필(소년부 1998-2000),
문영섭(중등부 1998-2001), 김금희(유년부 1997-1999), 김명심(유년부 1999년-2001),
이문규(고등부 2000), 한정인(고등부 2000-2002), 황순일(중등부 2001-2003),
지형습(소년부 2001-2002), 황정민(유년부 2002-2003), 김주원(고등부 2002-2004),
김용혜(소년부 2003-2004), 박정근(중등부 2003-2004),
김재희 전도사(유년부 2003-2005), 강현철(중등부 2004-현재), 조현규(고등부 2004-현재),   계교남(유년부 2004-현재), 박일남(소년부 2005-현재), 김정숙(유치부 1998-현재)

(6)본격적인 장년부 교육
1993년 4개의 장년부반(초급반, 교리반, 통독반, 부부성경반)을 신설함으로 장년부 교육에도 열심을 나타내게 되었다. 2000년부터는 제자학교(양육광정, 성장과정)를 시작했고, 제1기 총회전도학교 및 행복한 가정만들기반을 개설했으며, 전도폭발훈련, 일대일제자양육, 구역장권찰 등을 개설했다. 특히 2003년부터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장신대와 서울장신에서 초빙교수로 수고하시는 김창선 교수를 장년부 교육전도사로 모시고 평신도대학을 개설하여 지금까지 교육하게 된 일은 너무나 귀한 일이었다.

(7)보강하는 일꾼들
이 기간동안 임직된 중직들은 다음과 같다.
1994년-장로(조남열 김정옥) 안수집사(김용상 이승철) 권사(홍경란 홍문수 주인숙 박영              자 강점룡) 명예권사(장하양 박귀용) 권사은퇴(강용렬 최계식 이경란 김경애)
1995년-안수집사(이봉현 이석범 박종음 김대영 이진영 김경원 최은호 김상섭)
         권사(전임자 김고아자 김옥순 원이식 백규자 김정현 김정님 김정순 윤정순)
1997년-장로(정기덕) 안수집사(최충권 권철주 정회균)
        권사(이덕례 정영준 허현영 이영금 유오순)
1999년- 안수집사(이정식 이성재 양기석 박건선) 권사(최재희 전금희 남상례 심우숙 안영분)
2000년-장로(한상용 이승철 이석범) 안수집사(오연석 김양수 김현태 김판욱 박진수 제성민           유기춘 이도윤 임태식) 권사(배수자 백규선 김영귀 김미희 이송자 신애경 이송자 강          순신 안승자 황갑례 김영숙 김성숙 이덕순 전선자)
2002년-장로(김대영 김승진) 안수집사(최영철 송두석 김성욱 이종철 이권철 노재호 성병제)          권사(오귀덕 이정순 최경아 박은순 이경희 김순혜 박용순 문정순 김애연) 명예집사          (이대봉 박영초) 명예권사(강연희 김능희 권인수 허선분 신옥순 김만례 백현순 김보          옥)
2004년-장로(김광석) 안수집사(박영실 김강수 주영길 문이용 홍대만) 권사(이호자 권효례 최          영이 이선옥 조현정 남호숙)

(8)발전하는 찬양대
본당이 두 배나 크게 확장되면서 찬양대 수준도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외부에서 지휘자와 반주자들을 모셔옴으로 질적으로 격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0년 동안 호산나찬양대(3부) 지휘한 김경중 집사, 1998년 부임하여 지금까지 할렐루야찬양대(2부)를 지휘한 홍순만 집사로 인해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피아노 반주자 주은희 집사(2부), 윤나라 선생(3부), 김지영 선생(1부), 오르간 반주자 천영진 집사의 노고도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찬양대 발전을 위해서 많은 교회들과 찬양대 교환예배를 드렸는데, 그 교회들을 열거하면 사능교회(1994년), 왕십리중앙교회(1995년), 송정교회(1997년), 신광교회(1998년), 고양홍익교회(1999년), 성민교회(2000년), 금호교회(2001년) 등이다. 그리고 1997년부터 오후예배를 돕고 있는 미리암찬양단과 금요기도회를 돕고 있는 셀라찬양단, 청년부예배를 돕고 있는 실로암찬양단의 기여한 공로도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전도운동, 새새명축제
한국교회 성장이 둔화된 여파가 우리 교회에도 미쳤는지 93년 이후 거의 10여 년 동안 장년집회수가 평균 700명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운동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1993년에 전도간증집회(강사:김만철 집사, 구봉서 장로, 김해경 성도),1994년 전도강습회(강사:안강자 권사), 부부초청세미나(강사:김종주 장로 부부), 이웃초청 전도집회(강사:김종일 목사) 장년건강강좌(강사:홍문화 교수), 청년신앙강좌(강사:김성일 장로), 1995년 찬양간증집회(강사:김석균 집사), 신앙간증(강사:박형근 최선자 권사), 청년신앙강좌(강사:김명현 교수), 1996년 부흥사경회(강사:오신주 목사), 1997년 찬양간증(강사:문전태 목사), 신앙강좌(강사:정태기 교수),1998년 부흥사경회(강사:최대준 목사), 2000년 특별집회(강사:이우근 장로, 이정태 박사, 이희범 목사), 간증집회(강사:손정자 선교사), 교사영성부흥회(강사:이찬수 목사), 2001년 교사영성부흥회(강사:최윤배 교수), 2001년 청년부 내적치유 사경회(강사:김의식 목사), 가정 세미나(강사:이희범 목사) 등이다.
특히 2002년부터 매년 개최된 새새명축제와 청년부 부흥으로 인해서 평균집회가 2005년부터 800명을 넘어선 것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2002년 새생명축제(강사:윤극명 집사, 김은명 집사, 배창돈 목사, 남창우 목사)
2003년 새생명축제(강사:곽명옥 권사, 송준근 장로)
2004년 새새명봄축제(강사:이정호 목사), 새생명가을축제(강사:송선영 전도사, 전선애 권사)  

(10)기관 활동과 친교
교세의 증가에 따라 기관의 활동과 친교가 활발하게 되었다. 1993년 지하문화관에 도서실(1,500여권의 장서)을 신설했고 1994년 전교인운동회(한양여전운동장), 효도관광(충주호), 1994년 서울노회 교회학교 주최 ‘성경고사와 동요, 동화대회’에서 아동부 종합 2위의 성적,  
1995년 극동방송 주관 공개방송(우리 교회 좋은 교회), 1996년 기독교 TV 방송(열전, 기쁜 우리 찬양), 야외예배 겸 운동회(한강고수부지), 1997년 1차 성지순례, 1997년 4개 남선교회와 8개 여전도회로 분립, 2000년 야외예배 및 운동회(창립40주년 기념, 한강고수부지), 창립 40주년기념 ‘홈커밍데이’ 개최, 2001년 제2차 성지순례, 2003년 휴게실로 개설, 2005년 8월 3일간 창립45주년 기념으로 전교인수련회와 운동회를 350명 참석 가운데 남서울대학교에서 개최하였다.  
    
  (11)점점 뻗어나는 봉사의 손길
  1993년부터 교회가 많은 곳을 향해 뻗치는 손길이 점점 확대되고 있었다. 1993년 여전도엽합회 주관으로 ‘노인초청잔치’에 120여명이 참석했고 1994년에는 효도관광(충주호), 진중세례식 거행(포항해병대 신병훈련소, 설교:김목사, 찬양:여전도회찬양대), 산음교회와 자매를 결연했다.
1994년부터는 각기관별로 농촌교회나 불우이웃기관들을 정하여 보조하거나 봉사하라고 권고한 결과, 많은 기관들이 농촌교회와 불우이웃기관을 돕기 시작했고, 특히 여전도회에서는 오랜 기간동안 은혜의 집(지체장애자의 집)에 봄이면 함께 소풍을 다녀오고 가을이면 김장을 해주었고 중고등부에서는 지금까지 소망노인의 집을 매월 방문하여 일일 효도를 해오고 있다.  
1995년부터 여전도회연합회에서는 매년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개최하여 금년까지 11회에 이르고 있는데, 그 이익금으로 지역사회 불우이웃 가정들에게 김장이나 연탄을 제공해 왔다.
1998년 여전도화연합회 주관 ‘환경미화원 초청잔치’, 수해당한 흥인과 명성빌라 주민 위한 식사봉사, 1999년 실로암 안과병원 무료진료, 홍익선교회 주관으로 북한주민 식량전달식(중국 연변), 2002년 성민교회와 연합으로 이웃사랑 헌혈, 남부지역 수재민 돕기, 2004년 지하철 신답별관  신우회와 자매결연, 북한용천참사 구호금 전달했다.
특히 1998년부터 젊은 제직들을 중심으로 ‘이웃사랑회(회장:김승진 집사, 후에 장로 임직)’가 결성되어 지금까지 7년 동안, 지역노인들을 초청하여 월 2회 식사를 제공함으로 지역사회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2)담임목사의 활동 상황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지금까지 교회 성장을 위해서만 전력하던 담임목사가 외부적인 활동의 폭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1989년부터 노회의 임원(부회록서기 2년)으로 시작하여 1991년 회록서기 2년, 1993년 서기 2년, 1998년 부노회장, 1999년 노회장으로 활동했다. 저술 활동으로 6권을 발간한 이어 1995년 근속 20주년 기념으로 첫 설교집 ‘또 다시 불붙게 하라’에 이어 1997년 ‘한국교회 이대로 안된다’, 1997년 ‘당신도 멋있는 제직이 될 수 있다’, 1998년 ‘새신자가 알고 싶은 기독교’를 출간했고, 그 외 각종 기독교 신문과 잡지에 원고를 게재하고 있을 정도이고, 2005년부터는 ‘월간목회’지에 일년 연재를 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안식년 휴가조차 모두 반납하고 20년 동안 목회에만 전념한 담임목사에 대해   1990년 이후부터 교회는 위로 차 외국여행을 보내 드리게 되었다. 공식적인 해외일정을 열거하면 교회에서 1991년 미국(수도노회 협의차), 1993년 성지순례(부부동반 2주), 베트남(선교여행), 1995년유럽(20년 근속기념, 부부동반), 1996년 러시아(모스크바교회 설립), 1998년 중국(연변, 동북아신학원 강의 차), 2004년 미국교회 목회현장 견학세미나(안식년 휴가, 부부동반) 등이다.
또한 총회적으로는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장로교출판사 이사(3년), 정신학원 이사(3년), 한국기독교가정생활위원회 이사로 활동했고, 2005년부터는 영락교회 수습전권위원장, 서울시 연합당회 부회장, 서울노회 교역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3)2005년, 현재 교역자 및 직원들
김태복 목사(1975년부터), 이정희 목사(1998년부터, 2000년 목사안수), 김홍식 목사(2003년부터), 김영국 목사(2004년부터), 최영걸 목사(2000년부터, 2005년 목사안수), 송기순 집사(사무간사 1997년부터), 오연석 집사(관리인 2001년부터), 전금희 권사(주방장 2004년부터), 정명인 집사(운전기사 2004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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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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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45주년사 원고(1993-2005년)

목양실
2005/09/01 4044 340
28
  4. 45주년사 원고(1983년-1992년)

목양실
2005/09/01 3103 330
27
  3. 45주년사 원고(1976년-1982년)

목양실
2005/09/01 2786 327
26
  2. 45주년사 원고(1968년-1975년)

목양실
2005/09/01 3134 362
25
  1. 45주년사 원고(1960-1967년)

목양실
2005/09/01 3125 334
24
  초기애환사(1982년)

김태복 목사
2004/05/07 3035 415
23
  초기애환사(건축준비기)

김태복 목사
2004/05/07 2610 468
22
  초기애환사(1977년)

김태복 목사
2004/05/07 2718 482
21
  초기애환사 수록작업을 마치면서

김태복 목사
2003/07/23 3443 508
20
  초기애환사(마지막회)

김관호 목사
2003/07/23 3250 539
19
  초기애환사(1975년 여름)

김관호 목사
2003/07/22 3532 480
18
  초기애환사(1975년 첫주일)

김관호 목사
2003/07/21 3226 479
17
  초기애환사(1974년 11월)

김관호 목사
2003/07/14 3045 452
16
  초기애환사(십일조 교인 증가)

김관호 목사
2003/07/07 2628 437
15
  초기애환사(1973년 11월)

목양실
2003/07/03 3081 445
14
  초기애환사(1972년 11월)

김관호 목사
2003/06/02 2518 333
13
  초기애환사(1972년 5월)

김관호 목사
2003/04/28 2690 327
12
  초기애환사(1971년 여름)

김관호 목사
2003/04/28 2539 429
11
  초기애환사(1968년 여름)

김관호 목사
2003/04/16 2341 329
10
  최기애환사(1968년 4월)

김관호 목사
2003/04/14 2442 336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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