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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교회초기애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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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호 목사 (2003-04-28 20:06:53, Hit : 2712, Vote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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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애환사(1972년 5월)
   ◇1972년 5월 4일◇
박순화 전도사님 별세.
교우들 철야 중, 새벽 2시 40분 목사 손에 눈감으시다. 1919년 2월 17일
세상에 왔다가 50여 성상을 나그네로 살다가 주의 품에 안기셨다. 독신
30년, 남편을 일찍 여의시고 대구고등성경학교에 고학으로 졸업, 그 후 서
울 흑석동과 신촌 봉촌동, 그리고 여기 홍익교회에 나와 같이 봉사하시다
가 가신 것이다.

1946년 11월 17일 경북 청도 온막교회서 수세(水洗), 그 교회당을 단독
건축하고 그 교회 장로님의 집 한 채를 사주시고 서울 와서 개척교회 봉
사로 일생을 마치셨다. 서울노회 전도사 고시에 합격, 그리고 홍익교회의
권사 피택, 다시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소리」잡지를 내도록
주선해 주시고 그는 말년에 자기 집을 교회당 옆에 마련하셨다가 그 집
전체(44평 대지에 20평 건평)를 교회에 드리고 숨지신 것이다. 그 분이 그
간 교회에 바친 것은 성찬상을 비롯하여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
였다.

그의 발병은 72년 초부터 숨찬 증세로 나타났다. 신경성 고혈압의 진단
을 받았다. 그럼에도 교회 일을 계속하였다. 그 분이 눕기는 교회에 새로
오신 교인의 집을 알기 위해 뒤따라갔는데, 너무 먼길에다가 언덕길을 오
르기가 힘겨운 탓이었는지 돌아와서 누운 것이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몸
이 되었던 것이다. 긴급히 진찰했으나 12지장염증이니 위장병이니 병원마
다 각기 진단이 달랐다.

나중에 중앙외과병원 김철순 박사의 진찰로 간경화증으로 진단 받고 그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다가, 다시 중앙메디칼센터에 입원하여 백방으로
치료해 봤으나 배에 물이 잡히고 병세는 날로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3개월간 병상에서 지냈다. 나중에는 한편 팔 다리도 쓰지 못하셔
서 그리도 걸어보시고 싶었으나 끝내 가셨다. 숨지기 10일은 어떻게 아픔
에 고통을 당하시는지 차마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한종학 집사님이
자주 병상을 위문함으로 신앙 깊은 대화 중에 지내셨다.

그 분은 자기 집을 교회에 바치기로 하고 2월 25일 나와 두 분 장로님을
머리 맡에 부르시고 자기의 결심을 피력했고, 자기 생시에 모든 수속을
끝마쳐 달라고 당부하셨다. 이것을 끝내지 않으면 고향에서 친척들이 와
서 마귀 놀음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기도부탁을 하여서 내
가 기도 드리고 이수형 집사를 동석시켜 수속절차를 당부했고, 이수형 집
사의 수고로 이런 수속을 끝냈다.

후일담이지만, 그의 별세 후, 고향에서 그 분의 시모와 양자가 와서 집문
제를 거론하면서 기세가 험악했으나 한종학 집사님이 그 분들을 불러모
으고 모든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들을 납득시키고 내려 보내셨다.
이처럼 전도사님 집이 교회에 드려지는 데는 한종학 집사님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1972년 5월 6일◇  
고별예배 거행.
그 분이 전생을 바쳤던 교회당에서 그가 봉헌한 성찬상 앞에 놓여진 관
속에 누우신 채 고별예배를 드렸다. 관 위에는 교회에서 만든 꽃과 김영
숙 집사가 드린 꽃다발, 박찬일 선생이 드린 화환으로 장식되었다. "나의
날이 연기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의 날이 연기같이 사라졌으나,
그의 날이 당아 새같이 고독했으나,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기로 그의 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설교였다.
묘지는 김선희 집사가 묻힌 파주군 기독교묘지였다.

그 간의 전도사님의 치료비는 그 분의 돈으로 다 충당했는데, 그가 세상
을 떠나시는 때는 잔고가 없었다. 치료비는 그의 병상에서 내어주시는 돈
으로 내가 약을 샀고 병비를 지불했다. 추산 약대금은 10만원 정도였다.
세상가시는 날까지 맑으신 정신으로 계시다가 숨지기 2일 전부터 혼수상
태를 계속한 것이 전부였다. 그는 전도회비 500원 못 낸 것까지 다 물고
가신 것이다.

전도사님의 장례 비용은 나올 데가 없었다. 마침 「소리」지 편집비로
모아 두었던 20만원을 장례비는 나는 내놓았다. 나의 수고비로 한종학 집
사님의 의견따라 떼두었던 것을 그 동안 전도사님이 따로 보과 중이었다.
장례의복, 식사 등은 작은 한 집사님 맡고 장지 매입의 교섭은 김장기 장
로님이 맡고 신문광고는 이정남 전도사님 맡으셨다.

10만원 작은 한 집사님께, 10만원은 김장기 장로님께 그대로 드렸다.
들어온 부의금은 김동희 10,000원 신선옥 3,000원 신순옥 2,000원 김정근
2,000원 진수진 500원 표재환 1,000원 유순옥 500원 송순월 1,000원 박순동
(조카) 10,000원 박금구 1,000원 정명옥 500원 주선태 1,000원 무명씨 500원
오갑현 1,000원 임흥수 300원 봉원교회 5,000원 합 30,300원이었다. 이 돈
으로 내가 맡아서 교통비와 잡비로 사용했다.

후일 흑석동의 장성심 권사님이 오셔서 5,000원을 주고 가셨다. 이 돈을
내가 사용했다. 20만원 중에 5,000원을 받은 셈이다. 편집비 20만원을 모
으는 동안 나는 내 용돈에서 소리 편집비를 충당해 왔다. 전도사님이 네
평생원인 여행을 위해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손수 계 등을 통해서 20만원
으로 늘려 놓으셨던 것이다. 그의 임종시 통장을 주시는 것을 받았으나
당장에 급한 돈 날 데가 없어 써버린 것이다.

교회의 무일푼, 이 일에 아무도 책임지신 이가 없다. 모든 친지도 모른
체 함으로 어쩔 수 없이 내 수중의 돈으로 묘지도 세 자리를 샀다. 전도
사님 가구도 다 그의 시모가 실어갔고 남은 책은 그의 조카가, 자봉침은
그의 언니 되는 이가 깨끗이 처분되었다. 어쨌든 나는 나의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전도사님의 묘비를 세우기로 제직회서 결정하고 헌금하였다.
김영숙 2,000원 김장기 1,000원 김승언 1,000원 이정희 500원 염종귀 500
원 김기중 100원 이진자 200원 김양자 2,000원 김동희 1,500원 장진분
1,500원 주선태 1,000원 박춘심 500원 오갑현 500원 윤순자 200원 합계
19,000원이었다. 그리고 전도사님 사택 뒷방 전세 250,000원 앞방 전세
100,000원은 교회가 안고 이다음에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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