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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05-09-01 16:46:27, Hit : 3103, Vote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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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5주년사 원고(1983년-1992년)
  4. 2차 부흥기(1983년-1992년)

교회를 신축한 후부터 1992년까지를 교회 2차 부흥기로 정한 이유는, 1991년 11월 본당화재와 복구에 이어서 1992년 교회당을 250평정도 증축함으로 새로운 시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2년도 교회를 신축한 후, 교회는 분위기는 일신되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직도 상당히 부족하지만, 신축하기 이전에 그 형편없는 작은 공간들에 비하면 활발하게 교육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전 예배를 마친 후 지하식당에서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에서 잔치 기분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1983년부터 1992년까지의 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나타내고 있었다. 교회신축 전에는 300명 선에 머물던 장년 집회수가 1992년에 가서는 배가 되어 평균 600명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세 불리기에만 전념했던 목회방향이 교회 일군들을 세우고 교회 재산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츰 교회 밖을 향해서 선교와 봉사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1)날로 확장되는 교세
교회당이 아름답게 신축된 후, 대대적인 전도운동을 한 결과 날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1983년에 장년 평균 집회수가 317명 이었으나 1984년에 414명, 1987년에 549명, 1990년 618명이 됨으로 500명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신축교회당도 감당할 수 없어서 1984년에 중상층을 중축하였고 1987년에는 3부예배(1부:7시, 2부:10시 10분, 3부:11시 30분)를 시작할 정도가 되었다.
교세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열심히 전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85년부터 교회 아래 위치한 한영중고등학교가 명일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세림아파트가 세워지고 810여 가구의 새주민이 입주하기 하고 1989년부터 사근동에 하아츠 아파트가 세워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온 교인들이 나서서 새로 입주하는 두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도하기 힘쓴 결과 교세가 크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2)교회 중직 세우기
교세가 급증함에 따라 일꾼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2년 단위로 중직들을 선출함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1992년도에는 원로장로 1인, 은퇴장로 2인, 시무장로 7인, 협동장로 1인, 안수집사 9인, 권사 26인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84년도 은퇴장로(김동희 노극순) 장로장립(주선태 임상준) 안수집사(김종문) 권사취임(정명옥 이재인 이정희 김양자 최계식 이경란 권복수)
1986년도 장로장립(정달영 김종문) 안수집사(황연규 김순득) 권사취임(정재임 신순옥 김정옥  이경숙)
1988년도 안수집사(김승환 정장웅 정기덕 강용선 윤기태 김정옥 김광석) 권사취임(김길지 김경옥 이숙경) 은퇴(안호천 장진분)
1990년도 원로장로(김장기) 장로장립(김순득) 안수집사(이현용 김용근 김승진) 권사(차말례 유순옥 백정숙 신수정 변삼남)
1992년도 장로장립(김승환 황연규 정장웅) 안수집사(한상용 이석권 송기정) 권사취임(전옥분  이판금 박희자 박은순)

(3)교역자 및 교회 직원 세우기
교회당 신축과 교세 증가로 교회 관리인이 필요함으로 1983년도 최충권 집사를 채용했고 1986년 남자 전임 부역자로 박태식 전도사(1988년 목사안수식, 1989년 사임)가 부임하고 이어서 1987년에는 엄인영 전도사(1990년 목사안수식, 1991년 사임)가 부임하게 되었다. 특이한 사항은 1986년 장년집회수가 500명을 넘어서면서, 담임목사 중심에서 운영되던 목회체제에서 부교역자들과 팀웤 목회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1986년 처음으로 전임 남자 부교역자들이 부임하면서 목회가 더 짜임새 있고 교세 성장 뿐 아니라 양육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8년부터 벧엘 공부(박태식 전도사 인도), 크로스웨이 공부(엄인영 전도사 인도)가 시작되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전임으로 수고한 교역자는 안삼식 전도사(1981년-1990년) 장융희 전도사(1989년 부임, 1992년 목사안수식, 1992년 사임) 이준문 전도사(1991년 전임, 1994년 목사안수식, 2000년 사임) 김성현 전도사(1992년-1996년)이다.  
그리고 1986년 12월부터 이순열 집사를 사무간사(1994년 사임)로, 1989년 7월부터 이진영 집사를 관리인으로(2000년 사임), 정영준 권사(2000년 사임)를 주방장으로, 최충권 집사(2001년 사임)를 운전기사로 채용하기로 함으로 교회가 한 단계 더 안정된 틀을 가지게 되었다.

(4)발전하는 교회학교
장년부서의 성장과 아울러 교회학교도 발전되고 있었다. 그 동안 거의 김인택 교육전도사 한 분이 아동부와 중고등부를 담당하여 왔는데 1983년 김인택 전도사가 사임한 후에 교회를 신축한 후에 아동부와 중고등부를 분리하고 아동부에는 최순남 교육전도사, 중고등부는 강성철 교육전도사가 맡음으로 학생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1983년도 초에 주보에 보면 아동부가 180명 중고등부가 130명 출석하고 있다.
그 동안 수고하신 교육전도사들을 열거해 보면 손철구 전도사(1983년-1987년), 유철배 전도사(1985년-1989년), 주선종 전도사(1988년-1991년), 이준문 전도사(1989년-1991년), 이은직 전도사(1991년-1993년), 임근묵 전도사(1992년-1994년) 송영희 전도사(1992년-1994년) 박경애 전도사(1992년-1994년)

(5)각기관 활동 및 친교 활발
구역은 83년도에는 27개 구역이었으나 1987년에는 45구역으로 1992년도에는 85구역으로 증가되었고 1989년 11월에는 각기관들도 활성화됨으로 남선교회는 3개부서, 여전도회는 7개부서로 분립하게 되었다. 1985년 10월에 창립 25주년 행사로 한양여고 운동장에서 제1회 전교인운동회, 1990년 10월에는 왕십리중앙교회와 엽합운동회를 개최했다. 1989년 강원도 춘성군 장절궁에서 전교인 친교야유회와 1991년 경기도 포천군 백노주유원지에서 전교인 친교야유회를 개최하였다.    

(6)늘어나는 교회 살림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많은 살림이 늘어나게 되었다. 1983년 목사관을 구입(사근동226-34), 1985년 봉고차 구입, 1985년부터 신용협동조합을 재신설해서 교인들의 생필품을 싸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1987년 대지 구입(30평, 마장동 381-1130평), 1985년 구 목사관(13평) 팔고 신목사관 구입(25평: 사근동 293-3), 1988년 부목사관 전세, 1989년 대형버스 구입(45인승), 1991년 대지구입(15평, 마장동 381-11), 대지구입(27평, 마장동 381-32)

(7)밖으로 향한 봉사와 선교의 손길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밖으로 향해 조금씩이나 봉사와 선교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1981년부터 시작된 홍익유치원은 교회가 적극 보조함으로 적은 원비를 내고도 많은 혜택을 받을 정도여서 주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1983년 홍익선교회를 창설하여 농촌교회와 해외선교, 특수선교 활동을 시작했고 그해에 3년 안창에 개척교회를 위해 대지 20평을 구입했고, 교회에서는 많은 농촌교회를 돕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대학부가 봉사활동(86년 경북 영주 베다니 마을)을 시작하여 매년 소외된 농촌지역이나 불우이웃기관들에게 나가 봉사했고, 장학회를 구성하여 사근초등학교 우수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에는 지하철 기지역과 자매 결연을 맺고 매주 교역자를 파송하여 예배 인도를 하면서 선교활동을,, 1990년부터는 한양대 입시생을 위한 침식을 제공하기도 하는 등 밖으로 향한 선교와 봉사의 손길이 활발하게 되었다.

(8)본당화재와 증축
1991년 11월 20일(수) 오후 10시경 전기누전에 의해 본당 내부재인 목재에 점화되면서 화재가 발생함으로 본당에 있던 많은 장의자들과 그랜드 피아노. 오르간 등, 모든 기물이 전소(全燒)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한 달 동안 진행된 복구로 1억 이상의 비용이 들게 된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교육관 건축을 위해서 ‘40일 특별기도회’ 도중에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은 목회자 입장에서 너무나 난감한 일이었다.
열심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교육관 건축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건축기금으로 적립했던 1억원이 복구비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누가 기도회에 참석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달랐다. 당회는 복구위원회(위원장:윤종삼 위원:이수형 주선태 김종문 김용상 김광석 김화섭)와 성물구입위원회(위원장:정달영 위원:임상준 조남열 김순득 김승환)을 구성하고 즉시 복구공사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화재 다음날부터 온 교인들이 나서서 복구공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자진하여 헌금(복구헌금 9,700만원)과 헌물하기 시작하였다. 더 나가서는 9시기도회는 더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당의 창문을 비닐로 막고 바닥은 헌 장판을 깔고 예배드림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열심들이었다.
그 뿐 아니라, 한 달 만에 복구공사를 마치고 나서도 교인들의 열심히 넘치어 계속 증축공사를 하자는 주장들이 강하게 일어나서 1992년 2월에 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당회는 건축위원회(위원장:이수형 위원:윤종삼 주선태, 임상준 정달영 김종문 김순득 김승환 김광석 이석권 김화섭)을 구성하고 증축을 시작하여 6월 말에 완공하게 되었다. 약 250평을 증축하여 전체적으로 450평이 됨으로 본당도 배나 넓어졌고 많은 방들이 생김으로 그동안 좁은 공간으로 지장을 받던 교회학교 교육활동이 활성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또 한번의 교회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전기(轉機)가 마련된 것이다.
여하튼 본당 화재는 전화위복의 역사였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당 화재 시에 가장 큰 감사는, 워낙 골조를 튼튼하게 건립했음으로 본당 내부만 탐으로 내부만 복구하게 되었다는 점과 화재가 주변 한옥들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엄청난 교회 시련에도 온 교인들이 더 단결하여 열심복구공사에 임했다는 점이다. 더 나가서는 복구공사에 이어서 증축공사까지 진행함으로 이렇게 넓은 본당과 교육공간들이 생긴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특히 많은 교우들이 열심히 헌금해 주심으로 공사비와 의자, 피아노, 주방기구 구입비 등 약 2억 6천만 원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관리인 사택용으로 사용할 마장동 381-32호 27평(구입액: 1억 2천만 원)까지 구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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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5. 45주년사 원고(1993-2005년)

목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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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5주년사 원고(1983년-1992년)

목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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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 45주년사 원고(1976년-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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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1 2786 327
26
  2. 45주년사 원고(1968년-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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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 45주년사 원고(1960-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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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애환사(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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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애환사(건축준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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