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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교회초기애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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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호 목사 (2003-04-14 15:28:44, Hit : 2441, Vote :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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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애환사(1968년 4월)
◇1968년 4월 1일-6일까지
새 교회당에서 첫부흥회를 개최했다. 낮에 모일 형편이 못 되어 밤 시간
만 모였다. 교회당이 차지를 못했다. 처음 부흥회인 만치 열기가 없었다.
마치는 날에야 만원을 이루었다. 전일 석유에 대한 공포(空砲)로 우리 교
회에서는 신현균 목사에 대한 신망이 없었으나 이 지대에서는 그가 그래
도 전도강사로 적합한 줄 알고 강사로 정했던 것이다. 동시에 사례금도
없었던 탓도 있었다.

이대환 집사가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작은 아버지인 이종정 장로의 집에 기숙하고 있는 몸으
로, 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이 장로에 대한 반항하는 일이라고 주의를
받아 부득이 떠나야겠다고 했다. 그가 이 교회에 바친 열과 땀과 눈물이
얼마인데 이제 떠나게 되다니, 나도 아프고, 그도 아프고, 주일학교 학생
들도 아프고, 온 교회가 다 아팠다. 이 아픔의 원인은 불신앙 가정의 압력
에 의한  것이라니 기가 막히다. 눈물로 기도해 주고 작별했다.

◇1968년 4월 14일
부활절 주일이다. 새교회당에서 첫 성례식을 거행하였다. 이 날 학습 세
례식도 거행했는데 학습 받은 이는 정혜숙 홍문수 이정자 최병현, 세례
받은 이는 정현옥 이진자 였다.

위의 이정자 이진자 두 자매는 마장동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온 것이다.
얼만 동안은 그 교회 목사가 그들의 가정까지 방문하여 우리 교회를 신
신학(新神學), 용공 교회라고 위협까지 하명서 데려가려 했으나, 두 분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교회에까지 그의 모친이 찾아와 데려
가려 했으나 눈물로 떠나지 않았다. 두 분은 주일학교 반사, 성가대원, 청
년회 임원 등으로, 일꾼 없는 교회에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모른다. 두
분 다 결혼하고, 이진자 선생은 남편까지 데리고 교회를 나왔다.

◇1968년 5월 12일
어머니 주일.
세검정 삼각산으로 야외예배를 드리러 갔다. 오랜 가뭄 중, 이날은 아침
부터 비가 부실부실 왔다. 나의 고집으로 우중에 야외예배를 강행했다.
빗 속에서 비맞으며 설교하고 예배를 드렸다. 어떻게 추운지, 낮 모르는
기도굴에 들어가 덜덜 떨면서 점심들을 먹었다. 그 때의 나의 고집은 지
금 생각해도 안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비속이 도 좋다. 여하튼 이 성
질이 그만 교우들을 무척 떨게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순진한 교우들
이었다. 이 일은 두고두고 잊지들을 못했다. 가뭄 끝에 오는 비라, 흠뻑
비에 옷에 젖고 추워 떨면서도 기뻐했다.

◇1968년 6월 9일
나의 목사 위임식 거행.
아침부터 호우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온 교우들이 모였다. 옷은 물에 빠
진 생쥐꼴이었으나 기쁜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나 같은 것이 이런 순진한
사랑을 받나니, '주의 이름이 나 같은 것을 이처럼 사랑케 하였고나!'라는
생각에 잠겼다.

이 날 식순
사회/김성수 목사(노회 위임국장)
설교/이의호 목사(성동시찰장)
권면/이응화 목사(장로회신학교)
기도/이원태 목사(봉원교회)
성경봉독/안창의 목사(군목)
인사/김장기 장로

  주책스럽게 만감이 솟구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온 교우가 따라 울었다.
사랑에 감격하여 기도했고. 북에 계신 어머니 생각도 했다. 민구스러울
정도로 가끔 눈물이 흐르는 것, 나는 이게 큰 탈이다. 위임목사 허락시,
목사 사례금은 월 5만원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김장기 장로가 책임진다
고 하였단다. 그 후 회계상으로는 5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기입하혔으나 3
만원씩은 내가 헌금한 양으로 하고 그 말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나는 이
것은 교회를 속이는 일임으로, 즉시 3만원씩 지불한 것으로 정정시켰다.

이 날 떡잔치를 제직회서 베풀었다.
떡쌀낸 이들은 김선희 염종귀 강용렬 신선옥 김동의 조영희 박금구 집
사 등이었고, 내게 양복 한 벌을 한 이들은 강용렬 여종귀 신선옥 이수형
문공신 김양자 김동희 이대환 박금구 집사 등이었다. 그리고 김장기 징로
김선희 집사 두 분이 금반지를, 김동희      집사가 티셔츠를, 표재환 장
로님이 신앙고백서 책 한권을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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